예지서원-소통(疎通) 위한 논의와 문자 교육...시민사회신문 시민교육원

국무총리 장관 하겠다고 인사청문회에 나온 얼굴들의 당혹(當惑)과 좌절을 우리는 본다. 잘생기고 허우대도 그럴싸하며 학벌이나 경력도 탁월한 인사들이 빤한 거짓말과 발뺌으로 비웃음을 사는 모습은 참 신기하다. ‘지도자’이어야 할 이들이 ‘죄송’을 연발하는 모습은 서글프기까지 하다.

‘대통령 감’이란 이도 있었다. 또 장관 자리만 해도 어찌 만만할까? 그런데 도마 위에 오른 ‘이들’ 중 상당수가 자신의 인생을 ‘막 살아버린’ 협잡(挾雜)의 주인공임이 드러난다. ‘부덕(不德)의 소치’라는 가면 뒤에 숨지만 실제로는 범죄자 수준인 경우도 드물지 않다.

위장전입 논문부정 쪽방촌딱지 분양권투기 세금탈루 공공재산부당사용 공무원가사도우미 스폰서 배우자취업의혹 월권(越權) 부당자금수수의혹... 저런 이들에게 우리가 월급을 주고, 믿음을 주고, 기대를 주고, 더 나아가 우리와 자손의 삶을 좌지우지할 더 큰 권력까지 주고자 했다니 등골이 오싹하다. 납량(納凉)특집 영화인가.

이들을 중용하겠다고 손을 들어준 인사권자의 책임이 결코 가볍지 않겠다. 알고도 그랬다면 국민을 무시한 행태가, 모르고 그랬다면 나라의 시스템을 헝클어뜨린 행태가 각각 큰 문제다. 의당 국민들에게 스스로 벌을 청하고 나설 것으로 기대한다. ‘공정(公正)함’이 그것이다.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소년들아, 대망을 품어라!(Boys, be ambitious!)” 요즘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기는 청소년은 별로 없을 것 같다. ‘낡은’ 개념이기도 하겠거니와, 점수 경쟁 등 눈앞의 일만으로도 벅찬데 긴 시간과 큰 바람을 담는 ‘대망’을 챙기는 것은 워낙 무리일까?

스스로의 역량과 금도(襟度)를 키워 먼 앞날의 보람을 꿈꾸도록 격려하는 말이다. 19세기 말 일본서 교육자로 일한 미국 농학박사 윌리엄 S. 클라크 씨가 귀국 때 제자들에게 한 말로, 민태원의 수필 ‘청춘예찬’ 중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巨船)의 기관과 같이 힘 있다.”는 글과 함께 70, 80년대 청소년들의 가슴을 한껏 뛰놀게 했다.

이 문장이 떠오른 것은 총리 후보로 기자들 앞에 선 김태호 씨의 말 때문이다. 젊은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역할모델이 되고 싶다는 얘기였다. 그 후 그와 관련해 나온 얘기의 상당부분은 젊은이들이 혹 들을까 걱정되는 것들이었다.

그는 인생으로도, 총리 후보로도 젊었다. 그런데 그가 산 인생은 ‘젊은이들의 깃발’이 되기에는 너무 구태의연(舊態依然)했다. 그가 혹시라도 나중에 총리가 되고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면, 또 그렇게 되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럴 수 있었을까?

어쩌다 도지사가 됐고, ‘자기을 알아주는[지기(知己)]’ 어떤 덕인(德人)을 만나 총리 지명자 신분에 까지 올랐던가? 그 덕인은 누구이며, 그를 지지한 사람들은 어떤 이들일까? ‘말실수’를 그는 사퇴이유로 꼽았지만, 국민들은 그 말이 또 얼마나 고깝고 안타까웠을까.

청소년 시절부터 ‘대망’을 품고 행동과 결정을 스스로 규율(規律)하며,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키워온 이들이 아쉬워지는 때다. 편법과 위법, 뒷거래와 패륜, 거짓과 위선에 오염되지 않은 인재를 보고 싶은 것이다.

여기서 대망(大望)이란 말의 뜻이 왜곡되고 오염됐을 가능성을 지적해야 한다. 17세기 일본에서 덕천가강이란 빼어난 무사(武士)가 마침내 나라의 통일을 이루는 과정을 그린 소설 <대망>이 성공과 처세의 방편으로 읽히면서, 이 땅의 독자(讀者)들 중 상당수가 이 말의 뜻을 일본식 지략(智略)과 혼동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저어하는 것이다.

섬나라 봉건제 일본의 상황, 쇼군과 닌자라는 전쟁 또는 전투 사업가들(?)과 추종자들의 얘기가 기반이 되는 그들의 근대사와 삶의 모습을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하는 소설이라는 얘기다. 그 내용이 혹 목적 또는 결과가 수단을 정당화하는 것을 미화하는 모양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이다.

삶의 바탕에 칼을 두고 산 나라의 한 사람의 성공담, 부국강병(富國强兵)으로 다른 나라를 침략하는 것이 그 나라의 본디인 상황 속의 에피소드가 우리 사회의 ‘삶의 진리’로 잘 못 작동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돈이면 최고’ 따위의 생각 말이다. 그런 생각이 반영된 것이 구태 정치다.

클라크 박사의 다음 구절. ‘돈이나 이기적인 성취, 명성 따위 덧없이 스러지는 것들을 따르지 말라. 마땅히 인간으로서 갖춰야 할 바를 얻고자 힘쓰라.’ 너무 소박하고 평범한가? 그러나 진실의 얼굴은 우리 곁에 이렇게 있다. 상식과 ‘인간의 도리’가 그 것이다.

앞으로도 우리는 대통령과 총리가 필요하다. 그들을 가르칠 학자도, 그들의 월급을 줄 국민도 필요하다. ‘건강한 대망’으로 성장한 젊은이들이 필요한 것이다.

소년들아, 부디 대망을 품어라! 그대들이 미래다. 강상헌<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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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청문회 때면 뉴스를 보고 듣기가 참 민망하다. 오죽하면 ‘도덕적으로 문제는 있지만 일은 잘 할 것’이라는 허망한 얘기까지 당국의 입장으로 흘러나올까? 그런데 따지고 보면 도덕적인 문제가 아니라 법률적인 문제인 것이 진짜 ‘문제’인 것 같다.

높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분양권이나 쪽방촌 ‘투자’ 정도는 해야 격에 맞는다. 여러 목적을 위한 위장전입은 기초 중의 기초다. 돈이 많아야, 노후 걱정이 없어야 청렴하게 공직에 전념할 수 있다는 것일까? 좋은 부모, 능력 있는 부모임을 증명하기 위해서 학군을 위한 위장전입 기록도 있어야 한단다.

자녀 학자금 융자를 받은 공직자 때문에 가난한 대학생이 등록을 포기했을 수 있겠다. 미국시민이 된 공직자의 딸까지 의료보험 혜택을 받아 의료보험료가 올랐겠다. 공무원을 집안일에 ‘하인처럼 부렸다’고 지적하니 ‘인간적인 것’을 왜곡한다고 했다던가? 최저생계비만으로 집안 살림 다 꾸리고, 아들을 미국 유학 보낸 장한 아버지 얘기는 가히 인간승리 수준.

논문 중복게재나 군복무 관련 의혹은 차라리 애교 있다. 한 인물이 군인으로서 병역의무를 이행하면서 동시에 대학을 다녔고, 교사로 일하기까지 한 기적을 우리는 본다. 세금을 안내거나 절약한 기록도 ‘능력’으로 평가되어야 하나? 보고 배워야 할 교훈들인가?

고구마 줄기와 뿌리처럼 비리의 의혹은 끝이 없다. 누구라도, 청문 대상자인 당신들이 우리 민초(民草)의 입장이라도 나처럼 민망하지 않겠는가? 쉿, 아이들 들을까 무섭다.

더 민망한 것은 이들 고위 공직자 후보들의 어법(語法)이다. 비리 의혹의 내용을 묻는 질문에 답변은 하나같이 ‘부덕(不德)의 소치(所致)’란다. ‘내가 덕이 없어서 생긴 일’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이 말의 뜻과 쓰는 방법을 모르는, 막말로 무식한 사람들인 듯하다. 이렇게 쓰는 것이 ‘부덕의 소치’의 사용법이다. 조선시대 임금 태종의 말이다.

...(임금이) 신개(申槩)를 불러 말하기를, “금년에 천문(天文)이 변(變)을 보여 비바람 번개 벼락 서리 우박 산사태 홍수 등으로 인해 죽은 자가 심히 많으니, 모두 (내가) 부덕한 소치다. 이에 내가 공구(恐懼) 수성(修省)하고자 하니...(召議政府舍人申槩曰 今歲天文示變 風雨雷震霜雹山崩水溢 而致死者甚衆 皆否德之致 然予欲恐懼修省...) <태종실록 권 제18장>

천재지변으로 백성들이 이렇듯 심한 고생을 겪으니, (비록 직접 저지른 죄는 아니지만) 임금인 짐(朕)의 덕이 없음을 탓하고 이를 두려워하며 스스로를 반성하고자 한다는 뜻이다.

이와 비교해, 여자아이를 성폭행하고 죽이거나 다치게 한 범죄자가 “내가 부덕한 소치로 이런 짓을 저질러 유감으로 생각한다.”고 했다면, 이 말이 심히 잘못 쓰였음을 알 수 있을 터다. 이는 부덕의 소치가 아니고 범죄의 소치, 범법(犯法)의 소치인 것이다.

청문회의 의혹은 이들 고위공직자 후보들이 이제까지 살아온 방식을 보여준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현대 한국 사회철학 원론’이 아니라면 대부분이 범법 행위다. 청문회에서 옥석(玉石)은 다소 가려질 것이다. 그러나 ‘정의가 승리한다’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의 이상이 실현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너무 순진한 기대다. 일의 결말과 그 이후도 이미 우리는 안다.

권력의 속성, 그 꿀맛은 티끌 한 점도 못되는 순간의 존재인 자신이 우주의 영원(永遠) 속에서 불멸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을 하게 한다. 가없는 우주에 비기면 먼지 크기도 안 되는, 과거와 미래 사이의 영원 속에서 눈 깜짝할 사이에 왔다 가는 찰나(刹那)를 사는 ‘나’가 아닌가? 자기의 본디를 깨치지 못한 이들이 남 앞에 서겠다고?

그러나 그들은 이미 ‘백성’들의 등을 타고 앉아, ‘부덕의 소치’를 방패삼고 마치 임금이 베풀듯 권력을 행사하는데 익숙하다. 자신의 곳간과 아내의 계좌, 자녀의 펀드를 채우는 방법도 잘 알 터다. ‘내가 위대하니 저들이 이리도 섬기는구나’라며 스스로에게 최면을 건다. 이런 이들인지라, 윗사람 섬기는 마음인들 충심(衷心)일리 만무하다.

입은 비뚤어졌어도 말은 바르게 하라고 했다. ‘부덕의 소치’라 하지 말고 내놓고 ‘범법의 소치’라고 하라. ‘작은 죄’니까 그냥 넘어가 달라고 청하라. 주제파악도 못하면서 대통령 정도는 되는 이가 ‘말씀’해야 겨우 구색이 맞을 ‘부덕의 소치’라는 말을 버릇처럼 내뱉고 있다. 어이상실 수준이다. 듣는 이가 상쾌할 수가 없다.

좋은 것이 좋다는 얘기가 다시금 세상을 사는 ‘적당한’ 방법이 됐다. 소위 처세훈(處世訓)이다. 모난 돌이 정을 맞는다는 것이다. 눈앞의 작은 이득을 위해, 혹는 미물(微物)로나마 죽지 않고 살기 위해 세상의 도리를 버리는 것이 상식이 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은 간다. 이 무례(無禮)의 극치를 보여주는 ‘부덕의 소치’론자들도 계단을 내려올 것이다. 좋은 노후를 위해서는 쪽방촌 집문서도 필요하겠지만 더 필요한 것이 있다. 영리한 이들이니까 민초들 보다야 더 잘 알겠지. 무식의 소치, 몰염치의 소치, 거만의 소치다. 덕(德)없는 비열한 거리다.
강상헌<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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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일본제국이란 말은 식민지시대를 살았던 세대들에게 익숙한 칭호다. 해방되던 날 태극기를 처음 보았고, 우리말로 된 이름으로 처음 통성명(通姓名)을 했다는 그들의 의식구조에 새겨져 있을 상처의 깊이는 상상하기 쉽지 않다.

대영제국(大英帝國)이란 말을 우리는 드물지 않게 들었다. 부(富)와 무력으로 세계를 석권했던 영국을 지난 시기에 자칭(自稱) 타칭(他稱)으로 불렀던 단어였다.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고도 했다.

이 ‘대(大)’자가 우리에게 무슨 의미를 갖는지를 생각해 본다. 일제가 본보기의 대상으로 영국을 설정한 까닭은 효과적이었겠다. 또 자신의 여러 나라에 대한 침탈행위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서도 ‘저 대영제국을 보라’는 깃발은 설득력이 있다. 일본의 입장에서 말이다.

영국과 같은 이미지와 힘을 지닌, 또 세계를 ‘다스릴’ 이유를 가진 대(大)일본을 과시하기 위해 일본이 내걸었던 대영제국이라는 깃발로 우리는 과거 영국과 만났다. 대미국 또는 대중국이라는 말은 없다. 이젠 대영제국도 대일본제국도 과거의 유물이 됐다.

그러나 이 같은 제국시대의 관성(慣性)이 우리에게 남아있다. 간혹 이의 논리적이지 못함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없지는 않았다. 그러나 끈질기게 따라다닌다. ‘대영박물관’이란 칭호다. 런던에 있는 영국의 국립박물관인 영국박물관을 우리는 이렇게 부른다. 왜냐고 묻는 이도 별로 없다. 이 박물관의 공식 이름은 영국박물관(The British Museum)이다.

혹 과거에 다른 이름인 적이 있었는지를 묻는 질문에 영국박물관의 관장이었던 데이비스 윌슨 박사는 “우리 박물관의 유일한 이름은 ‘영국박물관’이다.”라고 방한(訪韓) 당시 필자에게 말했다. 일부 국가에서 ‘대영박물관’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모르겠다고 했다.(1983년 3월8일 동아일보 참조)

일본의 언론은 과거 ‘대영박물관’이란 이름을 썼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공식적으로는 ‘영국박물관’을 쓴다. 일본어로 된 관광안내서 등에는 영국박물관과 대영박물관이란 이름이 섞여있다. 유독 우리만 아직 거의 ‘대영박물관’이다.

필자는 이를 우리 민족의 집단의식에 스민 과거의 흔적일 거라고 본다. 말하자면 식민지배의 언어적 잔재다. 그러나 언어나 생활상 등에서 일제의 흔적이 대부분 지워지고 있는 상황에서 유독 이 명칭만이 건재(?)한 것에는 또 하나의 이유가 있는 듯하다.

신문사나 방송사들이 전시회나 강연회 등 영국박물관과 관련한 이벤트를 벌이면서 그 제목을 꼭 ‘대영박물관’이라고 표기하는 것이다. 왜 그럴까? 더 그럴싸한 제목으로 포장하여 자기 회사 사업의 몸피를 크게 보이게 하려는 하등 동물적 마케팅 수단, 문화로 포장한 돈벌이의 꼼수인 것이다.

심지어는 최근 영국의 도서관과 관련한 자기 회사 행사를 알리면서 서울의 한 신문사는 광고와 기사를 통해 ‘대영도서관’이라고 썼다. 좀 서글픈 코미디 한 토막 아닌가? 역사의 흔적과 함께 치사(癡事)하고 유치(幼稚)한 우리 의식의 한 단면이 이 ‘대(大)’자에 스며있는 것 같다.

언어의 정치경제적 속성 중의 하나다. 더러운 뇌물(賂物)을 ‘떡값’ 또는 ‘촌지(寸志)’라고 표현하는 사회의 관행과 이를 거침없이 수용하는 언론의 태도에서도 우리는 언어의 이런 속성을 본다. ‘원활한 흐름을 위한 미덕’이라는 가진 자들의 뇌물에 대한 입장을 대변해 죄악을 분칠한다.

정부가 추진하고, 많은 논란이 일고 있는 4대강 사업에 정부가 붙인 ‘4대강 살리기’라는 이름이 요즘 필자에게는 퍽 거북하다. 신문과 방송의 보도와 광고를 통해 온 국민에게 퍼부어지는 이미지 폭탄이다. 반대자들의 주장은 ‘살리기’을 거부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선량한 백성들에게 강요한다. 끝내는 이런 말을 듣고 말았다.

“강을 살리자고 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정신이 좀 어떻게 된 것 아니요? 그 사람들은 그럼 강을 죽이자는 것이요?”

그 택시운전사는 시키지도 않은 말을 했다.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관련 얘기에 대해 할 말이 많았던가보다. 운전사는 내가 그의 말에 의당 맞장구를 쳐줄 것이라고 기대하는 눈치였다. 한 정치인이 ‘4대강 살리기’에 관해 말하고 있었다.

정부와 정부에 장악된 언론들의 일방적인 ‘살리기’ 타령 때문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지금의 상황은 퍽 위험하다. 반대자를 악(惡)으로 규정하는 언어의 기술이 최소한의 여과장치마저 깨뜨리고 있다. 언어로 표현된 독재의 모습이다.

‘내선일체(內鮮一體)’라는 말을 아는가? 일본과 조선이 하나란다. 일본 제국주의가 내세웠고, 이 땅의 신문과 방송도 이 말에 박수쳤다. 일본과 조선은 하나인가? 역사를 보면 말을 바로 써야 할 이유가 절로 드러난다. 대영박물관도 영국박물관으로 바로 써야 한다. 당연히 ‘살리기’라는 단어도 적절한 말로 바꿔야 한다.
강상헌<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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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는 온 세상의 큰 본디다. 한문으로는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고 한다.

오래된 이 말의 뜻을 현대 산업의 융성(隆盛)이 다소 빛바래게 하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의 먹거리를 재배하여 수확하는 이 일 만큼 숭고한 것은 더 없다. 하늘과 땅의 기운을 수만 년 인류의 지혜와 질박(質朴)한 땀으로 품어내는 일이지 않는가.

농사 농(農)자는 크나 큰 그 뜻을 너끈하게 보듬는다. 이 글자는 별 진(辰)자로부터 말미암는다. 조가비 또는 조가비 밖으로 발을 내밀고 있는 조개를 그린 것으로 보이는 이 진(辰)자는 그 옛날 조가비가 농기구로 쓰인 바가 인연이 되어 농업 또는 농사의 뜻을 지니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이미지 갑골문 금문 전문 등 고대 農자의 변천)

첫 글자라고들 하는 옛 그림 글자 갑골문(甲骨文)에서 농(農)자는 수풀 림(林)과 별 진(辰)의 조합으로 나타난다. 다른 갑골문에서는 림(林) 대신 풀 초(艸)가 보이기도 한다. 세월이 지나 금문(金文) 시기에 이르면 여기에 경작지를 뜻하는 전(田)자가 붙는다. 다양한 변화를 거쳐 전(田)이 형태가 비슷한 곡(曲)자 모양으로 변한다.

림(林)자 초(艸)자를 비롯한 여러 모양의 글자들이 금문 이후 현대에도 쓰이는 해서(楷書)에 이르는 오랜 동안 이 농(農)자를 이루는데 한 역할 씩을 해 왔다. 나무와 풀을 가꾸는 일을 이른 것이다. 그러나 내내 별 진(辰)자는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켰다.

때로 ‘신’으로 읽는 이 글자는 원래 해[日] 달[月] 별[星]을 모두 지칭하는 낱말이었다. 일월성신(日月星辰)이 그것이다. 해변 조가비로부터 생겨난 그림글자가 고대 천문학에서 천상(天上)의 존재를 모두 아우르는 큰 뜻이 된 것이다. 조개가 껍데기를 벌려 활발히 움직이는 이른 봄에 전갈좌(座)의 별이 나타난다 하여 '별'의 뜻이 됐다고 푸는 자료도 있다.

토막해설-농사 농(農)

별 진(辰)자 부수에 속하며 ‘농사(農事), 농부(農夫), 농사짓다, 노력(努力)하다’ 등의 뜻으로 쓰인다.
갑골문 시기에 이미 진(辰)자와 함께 쓰인 역사 깊은 단어로 별 진(辰), 밭 전(田), 수풀 림(林), 풀 초(艸)자 등의 글자의 뜻을 모은 회의자(會意字)다.
별 진(辰)에 손[又(우)]과 비슷한 뜻인 마디 촌(寸)을 합한 글자인 욕(辱)자가 ‘풀 베다, 농사짓다’는 뜻으로 별 진(辰)자 대신 쓰였던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이 욕(辱)자는 중요한 농사 때를 어긴 자를 처벌해 욕보인다는 뜻에서 후대에 ‘욕되다’의 의미로 바뀌어 지금에 이른다.

천문학의 까마득한 시초는 제사(祭祀)를 지내기 위해 필요한 여러 사항과 함께 농사를 위한 해와 달의 운행(運行)을 따지는 것이었다. 그것은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德目)인 시간이다. 시기를 맞추지 못한 농사, 천문(天文)을 읽지 못한 농사는 당연히 흉작(凶作)이다.

‘시간’이란 뜻을 얻은 진(辰)자의 지위는 더 격상(格上)되어 방위(方位)로는 동남(東南)쪽, 시각은 오전 7~9시, 달로는 음력 3월을 가리키는 12지(支)의 제5위에 이르게 됐다.

중국 후한의 문자학자(30~124) 허신(許愼)은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 이 진(辰)자를 ‘백성들이 농사지을 때’라고 풀었다.

염정삼 저(著) <설문해자주(注) 부수자역해>는 이 글자를 ‘진동(振動)한다는 뜻이다. 음력 3월은 양기(陽氣)가 움직여 우레와 번개가 치고 백성들이 농사지을 때이며 만물은 자라난다.’고 풀었다. 또 ‘진(辰)은 (별의 하나인) 방성(房星)으로 천시(天時)를 나타낸다.’고도 했다. 넘치는 생명력을 느낄 수 있다.

천상의 일월성신과 천하(지상)의 논밭[田]이 함께 나무와 풀의 자람과 열매 맺음을 북돋운다. 이것이 ‘온 세상의 큰 본디’임을 이 글자는 웅변한다.

논을 뜻하는 답(畓)은 벼농사를 많이 짓는 우리 선조 동이족(東夷族)이 만든 글자다. 원래 한자는 논밭을 구분하지 않았다.(이미지 갑골문의 농사 農자) 

어떤 이들은 그 모양만을 보고 농(農)자를 ‘별[辰]의 노래[曲]’라고 풀기도 한다. 이는 말의 뜻 즉 어의(語義)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우리 조상을 비롯한 옛 동아시아 사람들의 상상력의 결집(結集)인 한자의 역사성을 채 헤아리지 못한 얼치기 해석이다.

기껏 별의 곡조(曲調)만을 담은 글자가 아니다. 위에서 본 것처럼 글자 한 조각에 우주의 섭리(攝理)를 다차원적으로 포괄(包括)하는 낱말이 농사의 농(農)자인 것이다. 인간을 먹이고 공기와 물, 산과 계곡, 강과 바다를 튼실하게 지켜내는 것이 바로 농(農)이다.

부국강병(富國强兵)의 허튼 생각에 절어 자연의 자애(慈愛)와 인간성을 마냥 허비해버리는 비극적인 시대의 모습을 정화(淨化)하는 순수한 에너지인 것이다. 이 귀한 농(農)을 장사치의 천박한 눈으로만 보고 있는 자들은 누구인가?
강상헌<예지서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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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글은 한 문장 한 문장이 모여 그 뜻을 이룹니다. 다른 이의 글 모으기나 따붙이기와 같은 행동은 글쓰기가 아닙니다. 내 자신의 생각하는 바를 스스로 쓴 것이라야 합니다. 생각하는 힘, 책 읽는 힘도 여기에서 비롯됨을 몸소 쓰기를 하면서 비로소 알게 됩니다.

글쓰기 강좌에 여러 번 참여했으나 원하는 바의 성과를 얻지 못한 대학생이나, 어느 정도 글쓰기는 해왔지만 ‘내 글’이 좋은 평가를 받을지 확신하지 못하는 분에게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또 논술의 토대를 튼실하게 닦고자 하는 고교생의 참여도 가능합니다. 장차 기자 PD 등 언론계나 글을 쓰는 직업에 진출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도 이 과정은 든든한 주춧돌이 될 것입니다.

강사는 시민사회신문 논설주간을 겸임하는 예지서원 강상헌 원장입니다.

한자학 강의로도 잘 알려진 강 원장은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오래 언론계에서 일했고, 서울여대 평택대 등에서 10년 이상 글쓰기 관련 강의를 해 왔습니다. 또 한국언론재단의 기자 교육 강사로도 일한 이 분야의 전문가입니다.

- 문장 스스로 짓기 첫발떼기 과정(5년 지도 결과에서 추출한 노하우)
- 기본문장(9형식)과 확대 형태 설정과 분석(모델링)
- 베껴쓰기 받아쓰기 바꿔쓰기 등 샘플링에 의한 훈련(시뮬레이션)
- 작문(作文)에 필요한 바탕 기초문법과 한자어휘론 제시
- 영어문장과의 차이점과 공통점 파악 등 영어 지식 활용
- 일반적인 글쓰기에서의 오류(誤謬) 분석
- 혼자서 글쓰기가 가능하도록 틀(patterns)과 경험을 제공
- 수료자에 한해 강사와 상담 후 심화과정(개인지도) 지원 가능

강의시간

매주 수요일 오후 7~10시(3시간) 1회

강의장소
서울시 금천구 가산동 60-21 IT미래타워 1907호 (주)VIS시스템 회의실
* 지하철 1,7호선 가산디지털단지역 부근

1회 강의의 정원
매회 10명(입금 순)
* 마감 전이라도 정원이 차면 다음 주 수강생으로 우선 등록됨

등록비
5만원(교재 포함)
* 입금계좌: 국민은행 777501-04-157775(예지서원)

마감
강의 전날 화요일 정오(입금 즉시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로 통지 바람)
* communicator@paran.com / 017-206-8894

시민사회신문 글쓰기교육원 예지서원
문의전화 017-206-8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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